덕후의 잉여력

백두산, 천년의 대 폭발

herocosmos 2021. 2. 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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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영산, 백두산

 

"The Millennium Eruption"

 

서기 900년경의 백두산 화산 폭발은 지난 천년간의 지구상의 그 어떤 화산 폭발보다 가장 강력했다고 전해지며 그 시간의 범위를 이천년으로 늘려도 "one of the most violent"라고 일컬어 집니다. 말그대로 "The Millennium Eruption", 세기의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대재앙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백두산과 한라산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화산이라고 배웠고, 시간이 좀 흐른 1990년대에는 사화산까지는 아니고 휴화산인 것같다라고 수정되었으며, 지금은 백두산과 한라산 모두 활화산으로 재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백두산의 재폭발 조짐이 여기저기서 (지열이 올라가고 있다는둥, 천지가 조금씩 부풀고 있다는둥, 심지어 뱀떼가 출몰했다는둥) 보이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백두산이 다시 폭발한다면 그야말로 지구급 대재앙을 불러일으킬 위력이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곁들여집니다. 지난 1980년의 세인트헬렌스(Saint Helens) 화산 폭발은 그냥 동네 초딩 취급해 버릴 수 있고 (참고로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은 차르봄바의 약 7배 위력으로 계산되고 있습니다), 인류가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긴 가장 강력했던 화산폭발인 1815년의 탐보라 화산폭발보다 최소 두배는 더 강력할 것이라는 추정이 절대적입니다.

 

차르봄바 "따위"가 폭발하는 모습

 

"동네 초딩" 세인트헬렌스 화산 폭발 모습

 

그렇다면 지난 천년간 가장 강력했던 화산 폭발이라는 백두산의 밀레니엄 분화는 어느정도였을까하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과거의 폭발 위력과 폭발로 인해 어떠한 재난을 겪었는지는 미래에 닥쳐올 백두산 폭발을 예측하고 그 피해를 최소하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무런 자료가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백두산의 밀레니엄 분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불과 20세기 후반으로 최근의 일이고 하필 그 위치가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는 저 윗동네인만큼 연구를 위한 접근조차 어려웠습니다. 

 

폭발 위력은 고사하고 폭발한 시기조차 불분명했습니다. 다만 여러 문헌상의 기록을 유추해 대략 서기 900년대 중반쯤에 폭발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는데 이 백두산의 밀레니엄 분화가 한국사에 상당한 떡밥을 던져주었습니다. 바로 백두산이 폭발한 때가 얼추 발해가 멸망한 시기와 맞물리는 것입니다. (발해는 서기 926년에 멸망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국가 중 최대의 영토를 가졌던 나라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고구려가 최대영역을 가졌던 문자명왕 시절보다 발해의 영역이 더 넓습니다),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는 너무도 허무하게 단 보름만에 거란에게 수도가 함락당해 멸망했습니다. 특별히 쇠락의 기미가 없었던 발해가 이리도 허무하게 쓰러진 것은 지금도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아있으며 이에 백두산 폭발설이 상당히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백두산 세기의 대폭발로 인해 백두산에 인접한 발해의 주요 도시들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날아든 화산재로 인해 전국토가 죽음의 땅이 되었을 것이란 가설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영역

 

이쯤되면 이게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이 아니라 민족의 철천지 대원수라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백두산 입장에서는 다행이게도 2017년 1월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Clive Oppenheimer) 교수가 밀레니엄 분화가 있었던 정확한 시기에 대한 논문을 국제학술저널인 쿼터너리 사이언스 리뷰(Quaternary Science Reviews)에 게재하였습니다. 논문 리뷰에 앞서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백두산 대폭발은 발해가 멸망한 후 20년 뒤인 서기 946년에 발생하였으며 이에따라서 당연히 발해 멸망의 원흉이 아닙니다.

 

 

 

Multi-proxy dating the ‘Millennium Eruption’ of Changbaishan to late 946 CE

서기 946 말의 백두산 대폭발의 멀티프록시 연대추정

 

연구팀은 백두산에서 24km 떨어진 곳에서 채취한 화석화된 나무를 이용해 밀레니엄 분화 연대를 추정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밀레니엄 분화 당시에 용암에 휩싸여 죽어 화석이 된 것이며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사망 당시 264년된 나무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팀은 이 나무의 수령으로 보아 서기 775년에 있었던 우주 방사선 일시 폭발 당시에도 살아있었을 것으로 기대했고 연구팀의 기대대로 이 나무의 172번째 나이테에서 775년의 우주 방사선 폭발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채취한 샘플과 샘플을 채취한 위치

 

172번째 나이테가 만들어졌을 당시가 775년이라면 나무가 백두산 폭발로 사망했던 당시 1번 나이테가 만들어진 연도는 바로 946년입니다. 연구팀은 이 나무는 946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분석했고 그렇다면 그때 백두산의 밀레니엄 분화가 있었다는 최종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샘플 분석 결과

 

연구팀은 이 결과를 보다 분명히 증명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과의 교차검증을 실시하였습니다. 

 

첫번째로 밀레니엄 분화 당시에 생성된 그린란드의 빙하에 남아있는 성분을 분석했는데 백두산 폭발 당시 날아간 화산재가 멀리 그린란드의 빙하에까지 그 흔적을 남겼던 것입니다. 바로 946년에서 947년 사이에 빙하에서 다른 년도와 비교해서 상당히 높은 황 성분(아래 그림 중 주황색)을 검출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백두산 폭발당시 날아간 화산재에 포함된 다량의 황 성분에 의한 것이라고 연구팀은 추정하였습니다.

 

그린란드 빙하 유황 성분 분석

 

두번째로 당해년도 전후의 북반구 온도 변화를 조사했습니다. 밀레니엄 분화급의 화산 폭발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화산재를 대기에 뿌렸을 것이고 이 화산재 성분 중 이산화황은 성층권에서 태양광을 차단하여 대류권의 온도를 낮추게 됩니다. 실제로 1815년 탐보라 화산 폭발 그 다음해인 1816년은 "여름이 없었던 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구팀은 여기서는 특별히 의미가 있는 온도 변화를 찾아내지는 못했으며 어째서 백두산 폭발이 북반구의 기후에 영향을 주지 못한것인지를 의문으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서에서 백두산 폭발의 증거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고려사 정종 원년인 병오년의 기사입니다. 

 

 

是歲 天鼓鳴 赦

이 해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

 

- "고려사 권2 세가2 정종 원년 기사" 중에서 -

 

 

바로 946년 그해에 우리의 고려사에는 "천고명(天鼓鳴)"이라는 표현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하늘을 뒤덮는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이에 당황해서 국가에서 사면령을 내렸는데 바로 이것이 백두산에서 470km 떨어진 개경에까지 울려퍼진 백두산의 폭발소리였던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연구팀의 일본 나라현의 흥복사(興福寺)라는 절에서 946년 11월 3일에 하얀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라는 기록이 있음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발해를 마지막으로 우리 민족은 만주 대륙과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주를 영영 잃게된 것이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 때문은 아니었음을 다행이라고 여겨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백두산 재폭발 우려와 함께 과거 천년전의 백두산 밀레니엄 분화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습니다. 발해 멸망의 미스테리와 맞물려 한국사의 떡밥이었던 백두산 천년의 대폭발.. 조금은 흥미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어 이렇게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를 수행한 오펜하이머 교수의 코멘트를 소개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Changbaishan is a site revered by the Koreans. It is steeped in folklore and Koreans see it as their spiritual and ancestral home. Its eruption in 946 was one of the most violent of the last two thousand years and is thought to have discharged around 100 cubic kilometres of ash and pumice into the atmosphere -- enough to bury the entire UK knee deep.

 

백두산은 한국인들에게 숭상받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관념은 민속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한국인들은 백두산을 영적인 기원지로 여기고 있습니다. 서기 946년의 백두산 분화는 지난 2천 년 동안 가장 격렬했던 것 중 하나였으며 영국 전체를 무릎 높이까지 뒤덮기에 충분한 100 세제곱 킬로미터의 화산재와 경석을 대기 중에 내뿜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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