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잉여력

한국 늑대

herocosmos 2021. 1. 2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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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서 현재 남한에서는 늑대가 이미 멸종된 상태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959년부터 1970년까지 창경원에서는 열마리의 늑대를 구입해서 키웠고 번식에도 성공해서 이들 사이에서 21마리의 새끼를 얻었고 그중 1970년 4월에는 검은색 모색을 가진 새끼가 태어나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59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창경원 동물원에는 십마리의 늑대가 들어왔다.

기증받은 것이 한마리이고 나머지는 구입한 것. 그 십마리가 번식하여 모두 이십일마리가 창경원을 거쳐나간 셈이며 현재는 십일마리가 있다. 암수 두쌍에 그들의 새끼 칠마리.

 

 

당시 화제가 되었던 검정색 새끼

 

 

한국산 늑대는 다른 만주지역이나 북미, 북구지역의 늑대와는 달라 한국 특유의 종류이기도 하다. 한국산 늑대는 만주늑대와 전체적으로 비슷하나 털의 길이가 다소 짧으며 복부와 옆구리의 털은 더욱 짧고 목과 몸의 양쪽은 털이 밀생하여 부풀었다.

 

일본에는 한국산 늑대가 없고 북미와 북구에 있는 늑대는 한국산 늑대의 아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에서는 오륙년 전에 일본 포유류 동물학회에서 일본의 산견(山犬)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산 늑대의 두개골을 빌려달라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 "1970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사" 중에서 -

 

 

일본 동물원과 상호 교환으로 1963년 일본에서 말을 한마리 받고 늑대 암컷을 하나 보냈으나 운송도중 폐사했고 이후 1970년에 다시 암수 한쌍을 일본으로 보냈던 것을 보면 동물원 내에서 늑대의 개체수 유지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996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마지막 개체가 사망한 것을 끝으로 한국늑대의 혈통이 끊어졌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니다. 

 

이미 한국늑대가 사라져버렸고 변변한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지금에서는 한국늑대의 존재 뿐만 아니라 그 명칭마저도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한때 이땅에 살았던 이 동물에 대한 숨겨진 뒷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여러 회색늑대의 아종 중에서 과연 한국 특산종이라고 있는 별도의 한국늑대가 있었던 것인가?

 

현대 생물분류학에서 회색늑대는 총 38개의 아종으로 세부 분류됩니다. 물론 아종을 나누는 기준이 명확하지는 않아서 이 38개 아종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향후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여지는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학계의 분류 기준으로는 과거 한반도에 서식했던 늑대는 별도의 한국 특산종이 아니라 Canis lupus chanco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몽골리안 울프(Mongolian Wolf)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몽골리안 울프의 서식 영역이 몽고, 만주, 한반도 일대에 퍼져있었던 것이지 한반도에 살던 녀석들이 별도 종자는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학명이라는 뭔가 영어도 아닌 이상한 것이 등장하면 뭐 뭔지 모르겠다 스킵해야지 하는데 이거 참 쉬운 내용입니다. 학명이라는 것은 쉬운말로 우리가 "종속과목강문계"라고 외운 분류체계에서 어떤 "속"에 속하는 무슨 "종"임을 알수있게 속 - 종을 두자리로 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변이가 많아 조금 더 분류가 필요한 경우 "아종"이란 단위를 하나더 붙여서 세자리로 표기합니다.

 

즉, Canis lupus chanco라 함은 canis(개) 속의 lupus(회색늑대) 종 중에서 chanco라고 이름 붙인 아종이라는 뜻입니다. 풀네임으로 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식육목-개과-개속-회색늑대종-몽골아종 중에서 이라고 다 쓸수는 없으니 줄여서 "개속-회색늑대종-몽골아종"으로 표기한 것이 바로 학명입니다. 학명을 사용하면 이녀석들의 촌수를 쉽게 따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첫자리 부터 다르면 그냥 남남, 첫자리가 같으면 같은 속, 둘째자리까지 같으면 같은 종, 거기에 셋째자리까지 일치하면 이놈이 바로 저놈이다라고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몽골리안 울프의 서식지 (파란색)

 

1863년 존 그레이(John Edward Gray)는 타타르 지역에서 늑대를 사살해 영국박물관에 전시했는데 늑대를 뜻하는 몽고말인 "Чоно [초노]"를 따서 chanco라고 불렀습니다. 몽골늑대는 1880년에 이 늑대의 표본을 기준으로 회색늑대 종의 하위 아종으로서 Canis lupus chanco라는 학명으로 정식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몽골늑대의 서식지역은 중앙아시아에서 몽고, 중국 동부와 만주 그리고 한반도까지를 포함하였고 따라서 한국의 늑대 또한 바로 몽골늑대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런데 1923년 일본의 학자인 요시오 아베에 의해서 한반도의 늑대는 몽골늑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몽고늑대와 비교해서 주둥이가 상당히 좁다는 특징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별도 아종으로 분리할 것을 주장했고 이에 한국늑대는 Canis lupus coreanus (오오!! 코레아누스!! 오오~~)라는 그야말로 폭풍간지스러운 학명으로 몽골늑대에서 분리되어 별도 아종으로 정식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보라!! 저 한국늑대의 위엄쩌는 학명을!!

 

하지만 한국늑대 영광의 시절도 잠깐이었고 영국의 학자인 레지날드 포콕(Reginald Innes Pocock F.R.S.)은 요시오 아베가 주장한 한국늑대와 몽골늑대의 차이를 개소리 집어쳐하고 묵살했는데 단순한 지역적 변이일 뿐 별도 아종으로 볼 수는 없다며 도로 몽고늑대에 포함시켰고 이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다수설로 굳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 입니다.  

 

 

 

2. 티베탄 울프몽골리안 울프 = 한국늑대 (???)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저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이비 좆문가들이 판치는 세상이다보니 잘못된 정보들이 난무합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티베트의 늑대가 바로 북방늑대의 원종이며 티베트늑대와 몽골늑대가 동일 아종이고 이것이 곧 한국늑대다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단 답을 먼저 말씀드리면 분명히 틀렸습니다. 한국늑대와 몽골늑대의 관계는 지역적인 차이가 있지만 이것이 별도 아종으로 볼만큼의 차이인가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고 현재 학계의 다수 의견은 한국늑대 또한 몽골리안 울프에 포함된다는 것이라고 위에서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티베트늑대(Tibetan wolf)는 Canis lupus filchneri라는 학명을 가진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진짜 별개 아종입니다.   

 

2005년 본 잉여가 서울대공원에서 찍었던 티베트 늑대

 

티베트늑대는 티베트자치구인 서장(西藏, 시짱)외에도 중국의 감숙성(甘肅省, 간쑤)과 청해성(青海省, 칭하이)에 서식하는 회색늑대의 아종이며 인도 북부지역과 네팔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티베트늑대는 1907년 독일의 파울 매치 (Paul Matschie)에 의해 Canis lupus filchneri라고 명명되었는데 우리의 한국늑대를 날려버린 그 문제의 영국 학자 레지날드 포콕이 1941년에 티베트늑대가 몽골늑대의 동의어라고 언급하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티베트늑대 = 몽골늑대 = 한국에 서식했던 아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며 2005년 출간된 "Mammal Species of the World"의 3차 개정판에서 티베트늑대는 Canis lupus filchneri로, 한국늑대를 포함한 몽고늑대는 Canis lupus chanco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3. 늑대(??), 이리(??), 승냥이(??)

 

늑대를 지칭하는 여러가지 명칭과 한반도에 서식했던 늑대에 대해서는 여기 울프독님의 포스팅 "진짜 한국늑대의 모습"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한국늑대의 모습

http://blog.naver.com/kc6731/120187841489

 

짧게 요약하면 회색늑대 종(Canis lupus)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은 "이리"이며 늑대라는 것은 여러 이리 아종 중에서 한반도에 서식했던 이리를 가리키는 명칭이라는 것입니다. 즉, 늑대 = 한국이리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울프독님께서는 한반도 내에서도 또 다시 분류를 하셨는데 한국의 이리 중에서도 한반도 남부의 "늑대"와 한반도 북부의 "승냥이"라는 두 종류의 이리가 있었다는 이상오씨의 주장을 지지하셨습니다. 

 

다만 실제로 이상오씨의 책을 찾아보면 울프독님이 사용한 명칭과는 좀 다른데 한반도 북부의 "삼림이리",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늑대", 그리고 이 모든 이리와 늑대들을 통칭하는 우리말을 "승냥이"라고 기록 했습니다.

 

 

이리(狼)는 그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으며 그 분포 지역도 범위가 매우 넓다. 5대륙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이리가 있으나 이것을 크게 나누면 삼림이리, 초원이리, 야견(野犬)으로 분류된다. 삼림이리는 혹은 회색이리라고도 하며 이리족 가운데서 가장 큰 몸집을 가졌으며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의 북부 삼림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북부지역에 살고 있는 것은 삼림이리이다. 초원이리는 혹은 적색이리라고도 하며 이 역시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의 중남부 평원 지방에 서식한다. 각기 내종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통합하여 우리말로 승냥이라고 일컬음이 적당하겠다. 

 

 

만주에는 위에 말한 삼림이리도 있거니와 만주 독특의 만주적색이리가 있고 우리나라의 남부에는 삼림이리와 초원이리의 중간인 늑대(勒大)라고 하는 특산 이리족이 있다. 늑대는 우리나라 남반부 특유의 짐승으로서 몸집은 이리보다 조금 작으나 최대 15~16관, 어깨까지의 높이 3자 1치~2치가량이나 되어 용력이나 형모가 이리와 같은 놈이 있으며 때로는 이리와 분간치 못할 뿐더러 그와 공동 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다. 

 

- 이상오 저 "한국야생동물기" 중에서 -

 

 

이 부분에 있어서는 좀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듯 합니다. 현대의 생물학에서 쓰이는 용어와 과거 사람들이 사용하던 용어가 당연히 다르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용어의 차이일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생물 분류 자체가 다른 것인지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현재 생물분류학에서는 이상오씨가 언급한 "삼림이리"라는 것은 "유라시안 울프 (Eurasian wolf)"이며 이는 회색늑대 종 전체를 대표하는 승명아종으로 Canis lupus lupus라는 학명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늑대"라는 것은 여태까지 언급한 "몽골리안 울프 (Mongolian wolf)"로서 Canis lupus chanco입니다.

 

그리고 "승냥이"는 현대 생물분류학에서는 "Dhole"이라고 불리는 동물이며 Cuon alpinus라는 학명으로 보다시피 종이나 아종에서 갈려진 것이 아니고 아예 학명의 첫부분인 속 자체가 다른 회색늑대 종과는 완전 별개의 동물입니다. 아마도 이상오씨가 언급한 만주적색이리가 승냥이(Dhole)을 의미하는 걸로 추측됩니다. 

 

몽골리안 울프 (Mongolian Wolf)

 

유라시안 울프 (Eurasian Wolf)

 

승냥이 (Dhole)

 

다만 생물학에서의 분류가 그런 것이지 실제 민간에서 사용되는 용어는 꼭 정확한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북한에서 흔히 쓰이는 승냥이라는 표현(미제 승냥이 새끼들이라는 표현이 유명합니다)은 Dhole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늑대를 말합니다. 북한에서 늑대를 승냥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소스를 통해 확인해봐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만 조금 깊게 들어가면 늑대를 "말승냥이"로, 진짜 승냥이(Dhole)는 "개승냥이"로 부른다고 합니다. 

 

울프독님은 이 남북한 용어의 차이에 주목하면서 굳이 북한에서 늑대를 승냥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남북한 늑대가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과거 서울대공원 오창영 박사의 증언에 의하면,

 

늑대와 승냥이의 우는 소리가 달랐다.

② 승냥이의 꼬리가 보다 더 굵었다.

③ 두부는 늑대의 것이 더 작았다.

 

라고 둘의 차이를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승냥이는 Dhole이 아니라 북한의 늑대를 말합니다.) 즉, 단순한 북한 사투리가 아니라 뭔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름이 붙었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늑대를 승냥이라고 부른다는 증거 자료

 

한반도 남부에 이미 늑대가 사라진지 오래이며 그 사진조차 변변하게 남아있지 않은 지금 남한과 북한에 서식했던 늑대의 생물분류학적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몽고늑대와 한국늑대의 차이조차도 현대 동물분류학의 관점에서는 부정당하는 현실에서 더구나 한반도 남북간 개체들의 차이는 더더욱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이상오씨 같은 명포수의 예리한 눈썰미는 비록 동일 종이라고 할지라도 각 지역별 개체의 미묘한 차이 또한 잡아내기 때문에 이상오씨의 주장은 그런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대체 한국에서 서식했던 늑대의 진짜 실체는 무엇일까요??

 

첫번째 가설, 현대 생물분류학을 따른다.

쓸데없이 동물에 국적을 부여하는 국뽕을 자제하고 가장 신뢰할 소스인 현대 생물분류의 기준대로 한반도에 살았던 모든 늑대는 몽골리안 울프 Canis lupus chanco 이다. 일부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별개 아종으로 분류할 만한 차이는 아니다.

 

두번째 가설, 진짜 한국늑대의 존재 가능성

한반도 남부에 고유의 특산종이 있었다는 요시오 아베, 이상오씨, 그리고 울프독님의 주장을 근거하여 한반도 남부에는 현재는 멸종되고 사라진 고유의 한국 늑대 Canis lupus coreanus가 서식했었고, 한반도 북부에는 몽골리안 울프 Canis lupus chanco 이렇게 두 가지 아종이 존재했었다.

 

세번째 가설, 제 3 아종의 존재

첫번째와 두번째 가설을 절충하여 한반도 북부와 한반도 남부의 늑대가 서로 달랐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상오씨의 기록 중 한반도 북부의 "삼림이리"라는 것을 감안했을때 유라시안 울프 Canis lupus lupus가 한반도 북부 지역에만 일부 서식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래 그림의 유라시아늑대 서식 분포를 보았을때 연해주에서 한반도 북부로 일부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반도 대부분에 몽골리안 울프 Canis lupus chanco가 서식하고 있었고 한반도 북부 일부 지역에 유라시안 울프 Canis lupus lupus가 서식했다면, 남부와 북부에 다른 아종이 존재했다는 과거의 기록도 맞고 현대 생물분류학과도 모순되지 않는다. 

 

유라시안 울프의 서식지역 (주황색)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요? 그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한반도 남부의 늑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변변한 사진 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2003년 개마고원에서 촬영된 야생 늑대

 

북한 평양 동물원에서 촬영된 늑대

 

 

여기 2003년 북한의 개마고원 일대에서 촬영된 야생 늑대와 평양의 조선중앙동물원에서 촬영된 늑대의 짧은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우리나라의 창경원에서 살다가 떠난 늑대의 변변치 않은 사진 몇장이 있습니다.

 

유라시아늑대, 몽골늑대, 그리고 한반도 남부와 북부의 늑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변변치 않은 자료에서 그것을 알아보고 설명해 주실 분이 계실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과거 창경원의 한국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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